초나라 비단 사본은 기원전 3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이미지: CMG)
베이징, 중국--(뉴스와이어)--CGTN은 현재 미국에 소장돼 있는 2000년 이상된 중국 문화유산인 초나라 비단 사본의 반환에 관해 보도했다. CGTN은 보도에서 1942년 고대 무덤에서 발견된 후 1946년 수집가 존 해들리 콕스가 미국으로 밀반입하기까지의 여정을 추적하면서 중국의 정당한 소유권을 증명하는 중국과 미국 학자들의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했다.
아래는 보도의 내용이다.
1942년 겨울, 중국 중부 후난성(湖南省)의 성도인 창사(长沙)에서 여러 명의 도굴꾼이 전국 시대(Warring States period, 기원전 475~221년)의 고대 무덤을 노리고 초나라(Chu-state) 무덤에 침입해 칠기, 청동검, 비단 필사본 등 수많은 유물을 훔쳤다.
도둑들은 유물 상인 탕젠취안(Tang Jianquan)에게 전리품을 팔면서 ‘손수건’이라고 부르는 비단 조각이 든 대나무 상자를 사은품으로 무심코 던져 넣었다. 이 ‘손수건’은 나중에 중국 전국 시대의 유일한 비단 문자로 알려진 지단쿠(Zidanku)의 유명한 초나라 비단 필사본(Chu Silk Manuscripts)으로 밝혀졌다. 지단쿠는 말 그대로 ‘총알 창고’(bullet storehouse)라는 뜻으로, 도시 교외에 있는 탄약 창고인 발굴 현장을 지칭한다.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보다 1세기 이상 오래된 약 2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초나라 비단 사본은 초기 중국의 우주론과 의식을 기록하고 있다. 복잡한 텍스트와 삽화, 정교한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유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적 비극
유물 상인 탕젠취안은 당시 이 비단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현지 상인 차이 지샹(Cai Jixiang)이 다른 유물과 함께 필사본을 구입했다. 차이는 전쟁의 혼란을 피해 도피 중에도 비단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비단을 소중히 여겼다.
1946년 차이 지샹은 희미한 글씨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적외선 사진 촬영 차 물건을 상하이로 가져갔다. 그런데 상하이에서 중국 유물을 활발히 수집하던 미국인 수집가 존 해들리 콕스(John Hadley Cox)가 카이에게 접근했다. 콕스는 사진 촬영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비단 사본을 입수해 미국으로 밀반출했다.
차이 지샹은 속았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일방적인 계약을 콕스와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콕스는 사본의 가치를 1만달러로 평가하고 1000달러는 선불로 지불하되 원고를 다시 미국에서 돌려받지 못할 경우 잔금을 지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비단 사본의 80년 가까운 망명 생활이 시작됐다.
중국과 미국 학자들간에 이뤄진 컨센서스
한편 북경대학교의 리링(Li Ling)교수는 이 유물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40년 넘게 추적해 왔다. 그의 철저한 연구는 현재 스미스소니언 국립 아시아 미술관 (Smithsonian’s National Museum of Asian Art)에 소장된 사본이 실제로 지단쿠의 초나라 비단 사본임을 증명하는 완전한 증거 사슬을 재구성했다.
차이와 콕스 사이에 오간 추가 서신은 사본 반출의 이면에 감춰진 사실을 더욱 낱낱이 밝히게 됐다. 이 서신에서 차이는 콕스에게 상하이로 와 달라고 간청하면서 나머지 9000달러의 대금을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2024년 6월 칭다오에서 열린 ‘식민지 상황에서 반출된 문화재의 보호와 반환에 관한 국제 컨퍼런스’(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Protection and Return of Cultural Objects Removed from Colonial Contexts)에서 Donald Harper 시카고대 교수는 1946년 콕스가 해당 사본을 보관할 때 사용한 상자 뚜껑을 결정적인 증거로 전달했다. 뚜껑에는 원본 라벨과 영수증 기록이 남아 있어 1946년부터 1969년까지를 보관한 리 교수의 타임라인과도 일치한다.
하퍼 교수는 “박물관 큐레이터와 문화 당국 및 정부에 지단쿠 사본이 중국의 소유며, 중국에 반환돼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2018년 뉴욕 타임즈에 게재된 기사인 ‘2300년 전에 쓰여진 중국 사본이 어떻게 워싱턴에 도착하게 되었는가(How a Chinese Manuscript Written 2300 Years Ago Ended Up in Washington)’가 이 결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뤄진 귀향
1966년 미국의 의사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Arthur M. Sackler는 사본의 일부를 구입했고, 실제로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으로 돌려보내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1976년에는 중국 학자 Guo Moruo에게 전달할 계획이었지만 Guo Moruo의 병환으로 인해 만남이 이뤄지지 못했다. 1980년대에는 북경대학교의 Sackler Museum 신관사에 기증하고자 했으나 박물관이 개관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1987년 Sackler 박사가 사망한 후 이 사본은 현재 국립아시아미술관의 일부인 워싱턴 D.C.의 Sackler Gallery에 보관됐다. 박물관 웹사이트에는 이 유물이 ‘출처 조사 중(provenance research underway)’이라는 설명과 함께 ‘익명의 선물(anonymous gift)’로 등록돼 있다. 또한 Li Ling의 저서를 언급하며 그의 연구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차이의 계약서부터 콕스와의 서신, 사본의 미국 내 여정을 기록한 Li의 문서, Sackler의 이루지 못한 소원까지 모든 증거는 초나라 비단 사본이 당연히 중국의 소유이며 지체 없이 송환돼야 함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거의 80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한 중국의 이 국보급 사본이 결국에는 중국으로 반환돼야 한다는 것이 중국 측의 입장이다.
중국 글로벌 텔레비전 네트워크 소개
중국 글로벌 텔레비전 네트워크(CGTN)는 국영 중국 미디어 그룹의 세 가지 지사 중 하나이자 중국 중앙 텔레비전(CCTV)의 국제 사업부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CGTN은 여러 언어로 뉴스를 방송 중이다. CGTN은 2000년 CCTV-9 또는 CCTV International로 알려진 CCTV의 전 영어 채널에서 시작해 2010년 CCTV News로 이름을 변경했으며, 다른 언어로 된 채널은 2000년대 중반과 후반에 시작됐다. 2016년 12월 CCTV 인터내셔널 산하의 6개 비중국어 텔레비전 채널은 CGTN이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됐다. 2018년 CGTN은 차이나 미디어 그룹의 산하에 편입됐다.